50대의 놀기 ( 여행, 음식, 일상 )

자식 인생보다는 내 인생이지

유~레카 2025. 6. 2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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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하는 딸래미 버려두고 여행가기

유리한 것만 기억하는 우리라는 존재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기에는 집에 에어컨이 있는 집이 드물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오디오가 있는 집도 드물었습니다. 어느 날 부모님께서 친한 부부의 집에 오디오를 구입했다고 우리도 사야겠다면서 구입을 하셨습니다. 오디오의 목적은 디스코 타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고3이었기 때문에 부모님 친구분들이 잔뜩 오셔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시는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큰딸이 고3인데 부모가 이렇게 배려가 없어서야....

그때 아버지께서 한 말씀하셨습니다. " 네 인생은 네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지..."

 

맞는 말씀입니다. 저희는 삼 남매이기 때문에 사람들 좋아하는 부모님께서 그 기간을 도저히 참을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오디오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난 다음 주에 집에 에어컨이 들어왔습니다. 이건 또 뭔가 싶었습니다. " 딸~

춤추고 나니까 되게 더워~. 에어컨이 필요하겠더라고.." 그 주는 에어컨 신고식 때문에 지난주에 모이셨던 분들이 다시 모이셨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 환경은 이러했습니다. 

 

고3 딸도 배려하지 않는 부모같으니라고...하며 억울했습니다.

음식솜씨가 정말 없었던 어머니께서 싸주시는 도시락은 정말 맛이 없었습니다. 좋은 점이 있더군요. 

고등학교 때 수련회에 가지 않습니까? 거기서 밥을 줍니다. 대량으로 찌는 밥이기 때문에 맛이 없다면서 안 먹는 아이들이 속출합니다. 

저희 세 남매는 수련회에서 나오는 음식이 세상 맛이 있다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억울한 기억과는 달리 어머니께서는 희생하신 것만 기억하시더군요. 사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월급으로 교육비를 감당하기에는 꽤 버거우셨을 것입니다. 그런 살림에 배우겠다고 하는 것에는 돈을 아끼시지 않았습니다. 옷 한 벌 못 사입히고 매번 얻어 입히시면서도 교육비만큼은 아까워하시지를 않으셨습니다. 

 

희생의 범위는 어디까지?

한번은 저희 둘째가 묻더군요. " 엄마, 나 이번 시험 잘 보면 뭐 사줄 거예요?"

"네 머릿속에 지식이 들어가면 네가 좋은 거지 내가 왜 돈을 써야 해?"라고 말합니다.

학원 아이들도 가끔 묻습니다. " 선생님~. 저 시험 잘 보면 뭐 해주실 거예요?"라고요. 저는 또 대답합니다. " 내가 잘 가르쳐서 잘 나오는 건데 네가 커피라도 사 와야 하는 거지...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라고 말을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위해 제 생활의 일부에 제약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을 때는 학원보다 아이들 밥이 먼저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모로서 제 마음이 편하게 하자고 챙긴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을 위해 돈도 들어갑니다. 잘 입으면 내가 행복한 거고, 아이들이 잘 커 주면 아이들 걱정을 하지 않는 나의 말년이 행복할 테니 다 저 좋다고 한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뭘 희생해 본 적이 저는 없습니다. 

 

한 번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있는 큰딸이 안경을 살지 옷을 살지 고민을 하고 있더군요. 패션안경이라 비싸지도 않았습니다. 1~2만 원짜리 두 개를 놓고 어떤 것을 사야 할지를 고민하길래 5만 원을 주면서 둘 다 사라고 했습니다. " 엄마가 돈 버니까 좋다. 이런거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우리딸도 나중에 돈 많이 벌어~"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대학생들은 용돈도 준다고 하던데 저는 꼴랑 5만원 주면서 생색을 냅니다.

 

제 기준에서 희생이라는 것은 '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라는 배신감이 들면 희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둘째는 재수생입니다. 수시에 최저를 맞춰 입학해 놓은 대학이 있습니다. 지금 재수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어제 재수학원 선생님과 상담을 했습니다. 저희 둘째가 좀 더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리면 이미 붙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정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실소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웃겨서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재수를 택했을 때도 제 마음 편하게 하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언니는 학교가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3년을 매일 데려다주고 데리고 왔는데 둘째는 거의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언니는 방학 기간에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방과 후를 하느라 도시락을 두 개씩 싸줬는데 둘째는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둘째한테 너무 한 것이 없는 제 마음이 불편해서 재수도 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간 결과가 이러다 보니 재미는 있더군요. '요 녀석~ 나중에 언니에 비해 나한테 뭘 해줬어~'라고 덤비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생한 것이 없다 보니 기대치가 많이 낮아졌습니다. 그냥 잘 되기만 응원할 뿐입니다.

억울하지 않은 내 인생을 위하여.

남동생이 해외에서 근무를 하고 있고 자식이 셋이 있습니다. 방학 동안 큰 아이를 한국으로 보낸다고 하더군요. 어머니가 나이가 있으신데 밥은 어떻게 하라고 아이들을 보내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차마 거절을 못하시더군요.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내까지 딸려 보내면서 올케는 오지 않는답니다. 밥을 어떻게 하라고 저것들이 저런 행동들을 하는지 정말 답답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희생하시고 억울해하십니다. 저는 그렇게 살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일정 부분 닮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여하튼 조카들은 한국에 있고 집에만 가두어 둘 수가 없어서 다음 주에는 큰 아이와 워터파크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아침에는 제가 데려다주고 저녁에는 남편 보러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시험이 끝난 주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강원도 바닷가에라도 가야겠다는 생각했습니다. 조카들이 한국에 올 때마다 대규모로 여행을 다니곤 했거든요.

7월 6일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둘째에게 물었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다녀와도 되겠냐고.

누가 제 딸 아니랄까 봐 기특하게도 ' 다녀와요~'라고 말하더군요. 역시 좋은 건 저 닮고 나쁜 건 아빠 닮나 봅니다.

 

 

혼자 운전하기는 싫으니 남편, 저, 큰딸, 조카 두 명 이렇게 가게 되면 승용차로 충분히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매주 여행 다니던 저희 어머니도 모시고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휴식차 남편과 둘이 가는 것이 가장 좋지만 아내의 역할만 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요. 딸의 역할, 고모의 역할을 이번에는 하기로 했습니다. 조카들도 이제 좀 성장을 했으니 놀러 갔던 것들을 다 기억할 거라 생각합니다. 늙으면 생색을 낼 생각입니다. 

 

봉사 차원의 여행이긴 하지만 놀러 가는 건 참 좋습니다. 벌써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는 놀지만 남아 있는 딸은 열심히 공부하기를 응원합니다. 

 

 

이런글을 써놓고 운좋은 딸이라는 해시테그는 좀 찔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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