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와 다른 부모가 되기 위한 노력.
어릴 때 저의 부모님은 화목한 모습보다 싸우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이게 내 얼굴에 침 뱉기지만 정말 집에 들어가기 싫었습니다. 그 덕분에 고3 때는 독서실에서 살다 보니 성적이 올라가는 효과도 보았지요.
가족보다는 남들이 더 소중했던 아버지는 남들에게 더 친절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은연중에 가정교육이 되었는지 동생보다 친구들에게 더 잘해주는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내 가족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대문에 매장을 가진 옷을 만들어 파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의 사장님은 집에서 놀고 있는 남편에게 사장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깍듯하게 대했습니다. 여사장님이 새벽시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남편분은 정말 귀여운 아기를 보듯 안아주며 수고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부부를 보며 그렇게 사이좋은 부부가 있다는 자체가 믿기지 않았습니다.
우리 부모님처럼 싸우고 지낼 바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사장님 부부라면 결혼 생활도 꽤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살고 싶어 그 두 분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남편이 집에서 놀고 여자가 돈을 벌면 남편들은 자격지심에 의처증이 생기는 게 보통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사장님께서는 정말 남편에게 잘했습니다. 언제나 존댓말을 쓰고 극진하게 대접하더군요. 저렇게 하는 것이 남편 기죽이지 않고 자격지심을 생기지 않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자격지심이라는 것은 자존감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 누구 하나의 노력으로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의 경험이 너무 적고 우리 부모님과 다른 면을 찾다 보니 조선시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주 효과가 없는 건 아닌 듯싶긴 합니다.
아빠와 반대되는 남자를 찾다.
저희 아버지는 그야말로 상남자셨습니다. 주변에 친구들도 굉장히 많고 술도 좋아하셨습니다. 밖에서 술을 드시면 항상 집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오셨습니다. 잠을 자다가도 어머니가 깨우셔서 일어나 보면 아저씨들이 20명 남짓 집에 몰려와 술을 들고 계셨습니다. 일어나면 설거지 기계처럼 계속 설거지만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성장하다 보니 집이라는 곳은 손님들로 넘쳐나는 곳으로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남편은 너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집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손님이 가고 나면 청소하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였습니다. 여행을 가면 여러 가족이 왁자지껄 다니는 여행에 익숙했던 저는 우리 가족만 가는 여행이 너무 심심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아버지와 반대되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이 남자도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은 꽤 좋아하더군요. 저희 아버지는 해남에 쌀 사러 다니시고, 동해안에 회뜨러 다녀오시고, 신안에 천일염 사러 다니시는 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퇴직 하시고 매일 밖으로 놀러 다니시는 것을 보고 남편이 그러더군요.
" 여보. 내 롤 모델은 아버님이야"
" 여보~. 저분은 내 아버지 셔. 내가 저분의 핏줄을 가지고 있단 말이지. 아버지처럼 행동하는 건 나 하나로 족해."
신혼은 짧고 현실은 길다.
저의 신혼은 정말 처참했습니다. 고부갈등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장난이 아닌 성격인데 어머님도 만만치 않으셨거든요. 정말 이혼하고 싶은 생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고부갈등이 심할 때는 친정어머니께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속상해하면 어머니는 더 속상해하셨을 테니까요.
이제 와서 그때 일을 이야기 하니 친정어머니께서는 그렇게 살고 있을 줄 알았으면 이혼시킬걸 그랬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제 입장입니다. 시어머님 입장에서는 싹수없는 며느리 때문에 아들이 아깝다는 생각만 하셨을 것입니다.
결혼하고 5~6년 까지는 어머님 때문에 매일 이혼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남자랑 이혼하고 나면 재혼을 할 것 같은데 새로 들어온 며느리한테는 이혼할까 무서워 시어머니가 잘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요. 참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긴 합니다.
여하튼 지금은 어머님께서 많이 외로워하십니다. 무뚝뚝한 아들 둘이 연락도 잘 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저는 가끔 술 마시고 갑니다. 시어머니 댁에 가서 2차를 하면서 이야기 합니다. " 어머님, 제가 어머님 때문에 속상했던 거 술 마시고 떠들면서 다 풀 거예요."라고요. 그러면 어머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라고. 외로운 것보다는 술 마시고 꼬장 부리는 며느리라도 오는 것이 더 좋다고요.
이젠 못 참지. 너도 변해라.
한 17년을 남편에게 잘했던 것 같습니다. 신혼 초에 남편이 회사 버스를 타야 한다며 5시 40분에 집에서 나갈 때도 아침밥을 꼭 챙겨줬으니까요. 최소 5첩 반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 임신하고 입덧할 때를 제외하고는 정말 잘해줬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주말에 학원 보강이 있을 때도 집에 잠깐 와서 점심을 챙겨주고 갔을 정도니까요.
사람이 일방적으로 퍼주다 보면 열받기 시작합니다. 제가 곰 같은 성격이다 보니 참 오랫동안 잘해 줬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남편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 17년이면 할 만큼 했어. 이젠 당신 차례야." 남편이 웃더군요. 농담인 줄 알았나 봅니다. 남편은 말합니다." 난 다른 남편들보다 잘하잖아. 아이들 목욕도 시켰고, 청소도 많이 도와줬잖아."라고요.
청소. 제 아버지 보다는 남편이 도운 건 맞습니다. " 어디다 대고 도와줬데~?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을. 여태 내가 했던걸 고맙게 생각해야지. 이젠 토스해 줄게." 저도 평생 돈을 벌었습니다. 남편의 월급을 제가 통째로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저 인간은 살림을 도왔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양심이 없는 것일까요?
평일은 제가 시간상으로 자유로우니 제가 합니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턱 괴고 남편에게 묻습니다. " 오늘 점심은 뭐 해줄 거야?" 초반에는 삐거덕 거렸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시작한지 3년 차가 되다 보니 토요일 오전에 장을 보고 주말 식사를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지난주 월요일에 그러더군요. " 당신 왜 설거지 안 했어?"라고요.
저는 말했습니다." 뭐라는 거야? 당신도 일요일 저녁에 설거지 안 해놨잖아.?" 아무 말하지 않더군요.
지나고 나니.
써놓고 나니 남편이 좀 쓰레기 같게 쓴 것도 같습니다만 전 남편이 좋습니다. 일단 착합니다. 시아버님이 법이 없어도 사실 분이셨고 신혼 초 저의 유일한 술친구셨습니다. 아버님과 너무 가까워 제가 학원을 오픈하고 제 명의의 카드가 처음 나왔을 때였습니다. 아버님께서 친구분들 만나러 나가신다고 하시더군요.
" 아버님. 오늘은 며느리가 쏘겠습니다. 이 카드로 맛있는 거 드시고 한턱 거하게 쏘세요." 저희 아버님.
점심값으로 3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쓰셨습니다.
남편이 너무 싹수없이 굴 때 한마디 했습니다. " 아들은 아버지 닮는다는데 너는 왜 엄마만 닮았니?"
그 이후로 남편이 조금 변했다고 느낀 건 제 느낌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남편을 고를 때는 시아버지를, 아내를 고를 때는 장모님을 보는 건 만고의 진리 같습니다. 제가 곰처럼 남편한테 잘했던 것도 저희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컸거든요.
결혼 전에 어머니께서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 여자는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행복한 거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머니 때는 여자는 결혼하면 살림만 하다 보니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경제적 능력이 없어 참고 지내던 시절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수틀리면 이혼이 가능한 시대 아닙니까.
남편은 제가 좋아하는 얼굴을 가졌고, 키를 가졌고, 덩치를 가졌습니다. (뚱뚱합니다. 0.1톤 같은데 아니랍니다)
제가 원하던 스타일이라 결혼 만족도는 꽤 괜찮았습니다.
끝으로
저는 제가 참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항상 이야기했습니다." 내 속을 누가 알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남편도 저 때문에 정말 골치가 아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혈질에 시어머니께도 지지 않는 성격에. 밥은 차려줬지만 수틀리면 술주정, 퇴근하고 오면 친구들 불러다 술 마시고 있는 광경이란...
제가 생각해도 정말 답이 없는 와이프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둘 다 참은 덕에 서로의 절충안을 잘 찾은 것 같습니다. 결혼 초반에는 제가 남편을 많이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보기에 남편이 절 더 많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입니다만. " 나 좀 그만 이뻐해~"라고 말하면 웃습니다. 과묵한 남편이 저와 있을 때는 말이 많아지고, 잘 웃어주고, 리액션도 잘해줍니다. 제가 남편을 봐온 20년 중에 지금이 가장 멋집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지금이 저는 정말 좋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천천히 남편과 손잡고 같이 늙어 가는 건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삶을 같이 살아 보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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