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며느리
요즘은 외국인 며느리가 흔한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외국인과 결혼했다고 하면 유럽 쪽 사람들과의 결혼이 많은 까닭에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지요. 지금은 동남아나 후진국에서의 결혼이 많아지다 보니 다문화 가족이 풍요롭게 사는 집이 드물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며느리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은 외국인 올케입니다. 남동생이 장가를 갈 때 올케네 부모님이 한국에 오시는 비행기표도 저희 집에서 끊어드리고 심지어 제주도로 신혼여행 가는 비용을 저희 집에서 감당했습니다.
사돈댁에서는 카자흐스탄 전통의상이랍시고 입지도 못하는 옷을 결혼 선물이라고 한 벌 가지고 오셨죠.
남동생이 신혼 초에는 기가 센 누나와 엄마가 자신의 와이프를 괴롭힐까 봐 아주 가관도 아니었습니다. 혼자 놔두면 누가 잡아먹나~ 치과도 차로 모셔다 드리고.. 웃기지도 않았습니다.
현실적인 상황
남동생은 직업이 외교관입니다. 어느덧 아이가 셋인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15년 동안을 외국으로만 돌다가 3년 전에 한국으로 발령을 받아 들어왔습니다. 한국에 왔을 때도 신혼 때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와이프가 아이들 셋을 키운다고 너무 고생한다면서 끔찍하게 아끼더군요.
그러다가 남동생은 한국 여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올케는 누구보다 게으릅니다. 하는 것이라고는 일일 일팩밖에 없습니다. 아이들 밥을 제대로 챙기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쇼핑하러 다니고, 병원에 다니고. 병원에서는 원인불명~. 이게 꾀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 새끼들 밥도 시어머니께 미루기 일상이었지요. 물론 시누이 눈에 보이는 것이 그렇습니다.
저도 저 나름의 이유가 있겠죠.
아이들이 어릴 때 잠깐 한국에서 유치원에 다니 적이 있습니다.
보통의 한국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아침을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를 씁니다.
저는 올케를 보고 문화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이들 밥은 굶기고 거지 같은 옷차림으로 유치원을 보내도 본인은 화장까지 하고 차려입고 아이들 유치원 차를 태워 보냈으니까요.
자신은 얼굴이 예뻐 능력 있는 남편을 만나 얼굴은 꼭 가꿔야 한다면서
남동생은 돈 벌면서 아이들 교육에 진심인 누나가 별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외교부에 가서 직원들을 보고, 친구 부부들을 보며 모두가 열심히 사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심지어는 " 한국 사람들 너무 부지런해."라는 말들을 연발하더군요.
그때야 자신이 어떤 여자와 살고 있는지 보기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다른 나라로 출국해 일 년 정도 지난 상태입니다.
갈등의 시발점
어차피 제가 데리고 사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남동생 가족이 올 때 저는 단 한 번도 공항에 픽업을 나가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태워 오고, 태워다 주고..
누나로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큰 조카가 사춘기가 왔는지 방구석에 처박혀 나오지도 않고, 공부도 하지 않고, 유튜버가 되겠답니다.
남동생 말도 안 듣고, 말이 안 통하는 엄마와는 말도 섞지 않더군요.
제가 남동생이 한국에 있을 때 지나가는 말로 한 적이 있습니다.
"**이가 키가 큰데 모델학원 한번 보내 보는 게 어때? 모델이 되면 좋겠지만 꼭 그게 아니라고 의상이나, 무대연출, 카메라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갖다 보면 아이가 공부 욕심이 조금은 생기지 않을까?"라고요.
갈등의 폭발
남동생은 이번 여름 방학에 큰아이를 한국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엄마는 그러라고 하셨습니다. 매번 뒤통수 맞으면서 올케에게, 아들에게 끌려다니는 엄마도 짜증이 났습니다.
어차피 아이들이 한국에 오면 다 제 짐이거든요.
또 손주가 온다고 좋아하시더군요.
"엄마, 엄마가 어떻게 밥 해 먹이려고 그래?"라고 했습니다.
"내 손주인데, 힘들어도 해봐야지.."
그런데 큰 아이만 온 것이 아니고 막내까지 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올케가 같이 와서 제 새끼들 밥은 해먹여야 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외국에 남겨진 둘째는 원래부터 제 밥은 지가 해 먹는 아이거든요. 회사에 가긴 해도 아빠도 같이 거주하고 있으니까요.
엄마는 올케에게 같이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가볍게 무시하더군요.
나중에 들은 소리로는 찢어지게 가난한 친정 식구들 그 나라로 초대해서 10일간 놀다 갔다고 합니다. 물론 항상, 언제나 그렇겠지만 돈은 남동생이 지불했겠지요.
올케는 돈을 벌어본 적이 없습니다.
알바로 병원에서 통역 몇 번 하고 몇만 원씩 몇 번 벌어본 것이 전부입니다.
제 친정 식구들 초대해 먹고 마시는 돈은 있고, 시어머니께 아이들 둘 보내면서 생활비 이야기를 일언반구도 안 하는 올케가 미웠습니다.
제가 총대를 메고 생활비 내놓으라고 압박했습니다.
첫 달은 받았습니다.
둘째 달은 입 씻고 있길래 또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엄마께 장문의 편지를 보냈더군요.
" 당신께 우리 아이들을 맡겼는데 왜 상관도 없는 시누가 난리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남동생이 아이들을 한국에 보낸 가장 큰 이유는 누나가 아이들을 바로 잡아주길 바라서였습니다.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써야 하는 친엄마는 놔둬도 잘 클 거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교육비도 아깝다고 하니 말입니다.
자신의 얼굴에 붙이는 팩은 떨어지면 안 되지만 아이들은 알아서 잘 큰다고 합니다.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살아가기 힘들 거라고 이야기를 하면 왜 아이들 미래를 두고 악담을 하냐고 하면서 대듭니다.
올케가 이러니 남동생 혼자 답답해하다가 아이들 교육관이 비슷한 누나나 엄마에게 아이들을 보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자기 자신도 공부를 해서 외교관으로 밥을 먹고 사니까요.
인연을 끊고 싶다.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나더군요.
남동생도 꼴 보기 싫고, 고생하는 엄마도 싫고.
상관도 없는 시누이는 조카 공부 좀 시켜보겠다고 한국어학당 알아봐서 입학시키고, 모델학원 예약해서 면담하고...
사실 남동생이 자신의 아이들을 보낸 건 그곳에서 케어가 되지 않고, 방구석에서 끌어내는 데 매번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저 믿고 보낸 것이지요.
제가 너무 어이없어하니까 엄마도 자식 없는 셈 친다고 하시더군요.
70 중반이 되니 아이들 밥 해 주는 것이 너무 힘이 든다고요. 그런데 며느리는 전화 한 통 없는 게 도저히 용납되질 않는다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게 맞는 건가..
그게 맞지 않더군요.
저는 엄마가 남동생과 인연을 끊어서 노년에 외로우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그것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악역은 내가 할 테니 엄마는 아들에게 숨 쉴 곳이 되어 주라고 말했습니다.
엄마까지 아들한테 며느리 욕하면 남동생은 끈 떨어진 연 같은 생각이 들 것이라고.
우리가 이렇게 답답한데 같이 사는 놈은 얼마나 더 속상하겠냐고.
마음을 고쳐먹어 보려고 했지만 올케가 보낸 문자 메시지가 완전히 뚜껑 열리게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가 잘못했더군요
인간이 아닌 것에게 인간으로서의 행동을 강요했으니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 취급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저는 왕래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고모로써, 누나로서 남동생과 조카들에게는 하던 대로 할 생각입니다. 조카들이 잘 커 줬으면 좋겠거든요. 하지만 저에게 올케라는 존재는 없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남동생이 올케와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자신과 지적 수준이 맞는 사람과 손잡고 놀러 다니는 노후를 보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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