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때 뒤엉킨 패턴과 인생, 그리고 내가 학원을 택한 이유
인서울, 의상학과 졸업 후 IMF와 만나다.
지금 제 책상 위엔 아이들이 풀다 만 문제집이 한가득 쌓여있습니다.
밤이 깊어지면 조용히 그 오답 노트를 들여다보면서 문득
20년 전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서울 건국대 의상학과.
지금도 꽤 유명한 학교죠. 그때만 해도 밤새 재봉틀 돌리고,
실밥에 파묻혀서 샘플 만들고, 졸업작품 하다 며칠씩 못 자는 게 당연했어요.
그게 멋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나도 언젠간 내 이름 걸고 브랜드 하나 만들어야지.”
근데 딱 그때 IMF가 터졌습니다.
선배들은 회사에서 잘려 나오고, 공장은 문을 닫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당장 먹고살 걱정을 해야 했죠.
저도 그 시절, 그냥 버티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다.
그래서 선택한 게 대학원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배워서 살아남아 보자.
그런데 이번엔 생각지도 못한 벽이 나타났습니다.
지도교수님이 아니라 옆 연구실 교수님이었어요.
안 그래도 원래 예민했는데, 말도 안 되는 일로 제가 찍혀버린 거죠.
어린 학생이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눈치만 보이고, 연구실 문 열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결국 저는 휴학계를 냈습니다.
그냥 도망치듯 나온 거죠.
동대문 새벽시장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옷밖에 없었으니까요.
결국 새벽 동대문 시장으로 갔습니다.
원단 샘플 들고 상인들과 흥정하고,
공장에서 샘플 뜨면 들고 뛰어다니고,
실밥 하나 틀어지면 공장에서 반품 맞고…
추운 겨울 새벽에도 원단 들고 이 공장, 저 공장을 돌아다녔습니다.
유행 조금만 놓치면 창고에 옷더미 쌓이고, 유행은 어찌나 빨리 돌던지..
그렇게 몇 년을 돌고 도니 딱 깨달아지더라고요.
‘아… 내가 만든 물건은 재고가 남으면 끝이구나.’
더군다나 그 당시에는 중국산 제품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유행도 안 타고, 저렴한 수입품이 대체할 수 없는 일.
사람한테 직접 가치를 주는 일은 없을까?'
출산 후 생계를 위해 다시 생각한 것들
저가 제품으로 나의 생계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나서는 사람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의상 쪽에 관심을 두다 보니 피부관리, 메이크업, 마사지와 같은 것들도 따로 배우러 다닐 만큼 관심이 있던 분야였습니다.
아이를 출산하고 피부관리, 마사지 관련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화장품 가격은 비싸더군요.
힘이 든 것은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적게 버는 저를 보고 있자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마사지라는 업종도 오래 할 일은 못 되더군요.
둘째를 임신하고 출산을 준비하면서 가게를 정리하였습니다.
이렇게 저는 가게 하나를 말아 먹었습니다.
학원 선생으로 진로를 정하다.
둘째 출산 후 아무도 등 떠밀지 않았는데 먹고 살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 혼자의 수입으로는 시댁 생활비 대는 것도 벅찼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시어머니는 지금의 저와 5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왜 아들 장가보내면서 생활비를 당당히 요구하셨는지 어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이가 안 좋습니다.
어찌 되었건 밥벌이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고민의 결과가 학원이었습니다.
필요한 건 펜, 종이, 칠판, 그리고 아이들만 있으면 됩니다.
내가 쏟아준 시간과 노력이 누군가에게 그대로 남고,
그게 다시 실력이 돼서 그 아이 인생을 조금은 바꿉니다.
물론 학원도 쉽지 않습니다.
대학 시절, 대학원 시절을 거치며 꾸준히 과외를 했던 터라 그렇게 겁이 나지만은 않았습니다.
용돈벌이 정도만이라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차린 것이라 큰 욕심도 없었습니다.
욕심도 없었지만 돈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서든 돈을 들이지 않고 차려보겠다는 마음으로 창문에 선팅도 직접 하고, 바닥도 직접 깔았습니다.
책상은 중고로 구입하고, 칠판은 가장 저렴한 것으로 카드 할부로 구입했습니다.
교육청 실사에서 떨어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최소한의 것으로만 했습니다.
학원을 하고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요즘 아이들 마음 열어보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요.
정도 들고, 성적도 오른 학생들이 학원을 나간다고 하면 어찌나 가슴 한구석이 허전하고 허무한지.
성적이 잘 나오면 손뼉 치지만, 조금만 떨어지면 모두 학원 선생이 못 가르친 탓이 됩니다.
그래도 동대문 새벽 골목길 돌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책상 위 오답 노트는 저에게 재고가 아닙니다.
없어져야 하는 짐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이 쌓이는 증거니까요.
제가 학원을 선택한 이유요?
IMF 한복판에서 뒤엉켰던 제 인생의 패턴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아이들 틀린 문제를 하나하나 다시 꿰매고 있습니다.
그게 제 방식입니다.
50이 된 지금. 학원은 내가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
그 하나하나를 다시 꿰매고 있는 지금 저는 더없이 행복합니다.
혹시라도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출산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신 분들.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여태까지 잘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보다 저렴하게 창업할 수 있는 것이 학원이라는 업종입니다.
사람을 따로 쓰지 않고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교습소로 시작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학원은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교습소는 오픈했다고 신고만 하면 됩니다.
특히 아이가 어린 분들이라면 더더군다나 학원이나 교습소를 추천합니다.
아이들 저학년 때 학교에 보낸 후 엄마들끼리 브런치 타임을 갖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학원을 운영할 경우 이 모임에 낄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습니다.
남편과 휴가나, 퇴근 시간이 맞지 않아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더 좋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시험 대비 기간이 우리 아이 시험공부 시간이 됩니다.
저는 학원을 하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아이들 학원비 절약 차원에서도 말입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용기 내보십시오.
30대 중반에 작게 시작해서 50대가 된 지금.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보다 더 벌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