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글러] 저게 뭐지? 저런 걸 돈 주고 사는 거야?
🧩 우리 딸의 이상한 인형, 알고 보니 '퍼글러'
딸아이가 현관문을 나서기 전, 가방을 메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시선을 빼앗겼다.
그녀의 백팩 한쪽에 매달린 인형. 이틀 전에도 봤고, 어제도 봤는데 오늘은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처음엔 고양이인가 했는데, 곰인가? 아니… 저건 뭐지?
눈이 삐뚤다. 입은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찢어진 것 같기도 하다.
색깔은 어쩜 그렇게 칙칙한지, 얼룩무늬에 바느질 자국까지.
딱 봐도 내 세대 기준으로는 “얘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싶은 비주얼이다.
나의 기준으로는 돈을 주고 달고 다니라고 해도 달기 싫은 비주얼이었다.
저런 걸 돈을 주고 사는 것도 모자라서 둘째 생일이라고 큰아이가 주문까지 해서 선물했다.
20대 초반의 아이들은 저런 것들이 취향인 건지..
그 이후에 둘째가 용돈을 모아 몇 개 더 사서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도저히 못 참겠기에 물었다.
“너 이 인형 이름이 뭐야… 왜 맨날 달고 다녀?”
딸이 말한다.
“이거 퍼글러야. 요즘 애들 다 알아. 유행이야~.”
유행이라고? 저렇게 괴기스러운 인형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나를 향해 " 이게 얼마나 귀여운데~"라고 말하는 딸을 보며
나도 꼰대가 되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내 딸이 단순히 이상한 인형을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지금 세대를 사는 정서를 달고 다닌다는 걸 깨달았다.
🧩 퍼글러 인형, 왜 이렇게 생겼을까?
퍼즐 인형은 '이상하게 생긴' 게 핵심이란다.
귀여운 곰돌이, 사랑스러운 캐릭터의 시대는 지났다.
지금 아이들에게는 ‘찡그린 얼굴, 풀린 실밥, 어두운 색감’이 더 끌리는 요소다.
왜냐하면 요즘 아이들은 말한다.
“예쁜 건 너무 많고, 진짜 감정은 안 예쁘잖아요.”
… 뭐랄까, 너무 철학적이다. 나는 초코파이 먹으면서 TV 보던 나이였는데.
퍼즐 인형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그건 감정이고, 자아고, 시대에 대한 미묘한 반항이다.
딸이 달고 다니는 그 인형은 사실 “나는 그냥 귀엽고 싶은 게 아니야”라는 선언이다.
🧩 딸의 인형, 그 속에 숨겨진 메시지
며칠 전, 딸이 그 퍼글러를 쓰다듬고 있는 걸 봤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얘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 인형을 만지작거리는구나.
그리고 깨달았다. 이 인형이 딸에게는 그냥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요즘 내 마음이 이런 상태야’**를 보여주는 도구라는 걸.
나한테 말은 안 해도, 그 인형이 딸의 기분을 대신 표현하고 있었던 거다.
예쁜 걸 고르던 아이가, 이제 이상한 걸 고르고,
남들이 불편해하는 걸 당당히 들고 다니는 걸 보며
나는 속으로 한마디 했다.
“아, 쟤 이제 어른 되는 중이구나.”
🧩 내가 모르는 세상, 하지만 아이는 그 안에서 자신을 찾고 있다
우리 세대는 예쁜 것, 반듯한 것, 정돈된 것이 좋다고 배웠다.
그게 사회적 성공의 첫걸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말한다.
“찢어진 감정도 감정이고, 울퉁불퉁한 나도 나야.”
퍼글러 인형은 딱 그런 메시지다.
불완전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
딸은 그 인형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엄마, 나 요즘 좀 복잡하지만, 괜찮아. 나만의 방식으로 잘살고 있어.”
🧩 부모는 그냥 감상자면 충분하다
이제 나는 딸의 퍼즐 인형을 볼 때, 그 기묘한 웃음이 반갑다.
이상하게 생겨도 좋다. 무서워도 괜찮다.
딸이 그 인형을 좋아한다는 건, 지금 자기 안의 감정과 솔직하게 마주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부모로서 내가 할 일은 단 하나.
“그거 뭐야?”라고 지적하지 않고,
“오, 이거 특이하다! 너한테 잘 어울려.”라고 말해주는 것.
딸은 아직 한창 자라고 있는 중이다.
퍼글러 인형은 그 성장통을 껴안는 중이다.
나는 그냥 그걸 지켜보는 감상자로 충분하다.
가끔은 그 인형이, 딸보다 더 성숙해 보이기도 한다.